여배우의 품격
샌드라 마턴(번역:김효원) / 로맨스 / 할리퀸
★★★★☆ 8
그것 말고는 달리 그의 태도를 표현할 길은 없었다. 몸은 그녀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해변을 오래도록 산책하는 일도 없어졌고 편하게 웃는 시간도, 뒷길을 드라이브하는 일도 없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무슨 일일까?
그의 태도 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날 밤 그토록 다정했는데. 포근하게 안아 주며 나를 잠들게 하고 부드러운 속삭임과 손길로 위로해 주었는데.
그녀는 새벽녘에 그가 침대에서 나가는 기척을 느꼈다. 화장실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옷 입는 소리가 났고 살짝 눈을 떠 보니 그가 티셔츠와 데님 바지를 입고 있었다.
팔코, 이리로 와요.
그녀는 소리 내어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옷 입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조심스러워 보여 그냥 가만히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 동안 일이 많이 밀려서 몰아서 처리하느라고.”
그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그녀에게 키스도 해 주지도, 웃지도 않고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났다. 이제 팔코는 매일 아침 점점 격렬하게 운동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었다. 게다가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저 간단한 말만 건넬 뿐이었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가 함께 잠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연인이 된 후 그들은 항상 함께 침대로 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먼저 자는 게 좋겠소.”
팔코는 밤이 되면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난 좀 더 있다가 자겠소.”
그녀는 혼자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침대로 와서도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안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흥분한 그의 몸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의 뜨거운 숨결과 능란한 손놀림 그리고 거친 소유욕을 느낄 수 있었다. 말도 속삭임도 없었고 그저 짜릿한 육체의 접촉 그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도 아침이 되면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눈물이 났다.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두통이 찾아왔다. 팔코 오시니라는 남자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눈물은 분노로 바뀌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있어 봐야 무엇이 달라지겠어? 그런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면 지금의 엘르 비셋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은 의지였고, 분노였다. 의붓아버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꾸려 오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도.
그러나 나흘째 되는 날, 그녀는 지치고 말았다.
내 이야기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그는 왜 굳이 그걸 듣겠다고 했을까? 왜 그렇게 집요하게 털어놓으라고 했을까? 나와 사랑을 나눈 것이 후회가 됐던 걸까? 어둠 속에서는 사랑을 나눌 수 있어도 밝은 대낮에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가?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창밖을 노려보았다. 그가 바닷가에서 그 해괴한 무술 동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좋아.”
그녀가 이 사이로 말을 뱉었다.
“좋다고!”
그녀는 문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계속 소리를 지르며 몸을 움직이고 한 발을 휙 돌리다가 위로 차고 가볍게 툭툭 건드리듯 발길질을 했다.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한순간, 그의 품에 뛰어들어 화가 난 것도 삐친 것도 아니라고, 당신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졌다.무슨 일이오?”
팔코는 허리에 손을 얹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엘르, 할 말 있으면 빨리 하시오. 난 지금 바쁘오.”
엘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요.”
운동을 하고 있잖소.”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이번 주 내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 무엇인가 스쳐 가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타월을 집어 들고 얼굴을 닦을 뿐이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을 때는 공허한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이곳으로 오던 첫날부터 했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뿐이오. 경호원이 힘이 빠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잖소.”
팔코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는지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고통은 컸다. 매일 아침 그녀를 두고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 낮 시간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운동하랴 이곳 마우이로 총을 가져다준 동료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철저한 작전을 짜고 있는 L.A. 동료와 의논을 하느라 바빴다.
그렇다 해도 지난 며칠 동안 그녀가 옆을 지나칠 때마다 붙잡고 싶을 때가 수십 번도 넘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이게 모두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위험을 이겨 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녀를 향한 감정 때문에 이번 일은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